호통 치며 군림하는 좌파 이상주의에 대한 피로감...그리고...

"이것은 정치 이야기가 아니다" [화제의 신간]

기파랑 칼럼 | 최종편집 2017.08.08 09:4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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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여, 금수저, 동성애, 청년 실업, 시위, 탄핵 등의 주제를 다루고 있는 이 책은
2014년 7월부터 2017년 3월까지 동아일보에 실렸던 칼럼을 단행본으로 엮은 것이다.
칼럼이란 매수(枚數)가 한정되어 있어서 흔히 개념에 대한 설명이 부족할 수도 있는데,
그 점을 보완하기 위해 저자는 예컨대 키치, 상호텍스트성, 그레마스 기호 사각형 등의
인문학적 개념들을 보충 설명함으로써 독자들의 가독성을 높였다.

게다가 글 전체를 플라뇌르(flâneur)의 시각으로 통합함으로써 책은 칼럼들의 단순 나열이 아니라 미학과 사회비판을 넘나드는 고급 인문학 입문서가 되었다. 원래 ‘산책자’라는 뜻의 플라뇌르는, 보들레르가 이 단어를 미학적으로 사용한 이래 도시의 거리를 천천히 걸으며 익명의 군중 속에서 시대의 징후를 읽어내는 예술가 혹은 지식인을 뜻하게 되었다.

저자는 자신이 현상을 파악하고자 하는 무한한 호기심으로 관찰의 촉수를 늦추지 않았던
도시의 산책자였다고 스스로를 평한다. 도시 산책자로서 그는 신문을 꼼꼼히 읽으며
서울 ‧ 한국 ‧ 세계의 보편적 삶이 무엇인지를 살펴보았다.
또 한편 소셜 미디어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실시간 정보를 흡수하는 디지털 플라뇌르이기도 했다. 이 책은 플라뇌르로서의 저자가 그렇게 관찰하고 사유한 단편적인 조각들을 한데 묶어 그려낸 이 시대의 징후이다.



『이것은 정치 이야기가 아니다』라는 제목 이야기

‘정치’의 그리스어 어원인 Politika가 ‘도시들의 직무(affairs of the cities)’라는 뜻을 갖고 있듯이, 정치란 한 공동체 안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영향을 미칠 사안을 결정하는 과정, 또는 그 공동체 안에서 자원과 권력을 배분하는 실천적 행위이다. 겉보기에 정치와 상관이 없는 듯한 모든 사회 ‧ 문화적 일이 실은 정치의 영역이다. 그러므로 이 책에 실린 모든 글도 정치 이야기라고 할 수 있을까. 그러나 당파성의 경향을 띤 이야기는 아니므로 역시 “이것은 정치 이야기가 아니다”.

다루어진 주제들

저자는 사르트르나 플로베르도 ‘잉여’였다고 말하며 젊은이 특유의 소외감은
현대 사회 고유의 현상도 아니고, 신자유주의 때문만도 아니라고 얘기한다.
그는 “모든 시대, 모든 사회의 청춘은 언제나 잉여였다. 아니 모든 인간은 언제나 잉여였다”라고 주장하며 오히려 사이버 스페이스에서 과감히 나와 자연의 물성(物性)과 접촉하는 일이 더 건강한 힐링이라며 접속이 아니라 접촉을 제안한다.

한편 비상식적이고 그로테스크한 그림을 그리는 화가 프란시스 베이컨이 우파라는 것에 저자는 놀라움을 표한다. 좌파 사상을 가져야만 고상하고 지적으로 보이며, 특히 예술가는 당연히 좌파적이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팽배한 지금 여기 한국 사회에서 베이컨의 철두철미한 예술가 정신과 인생의 통찰이 우리의 마음을 한없이 자유롭고 편안하게 해 준다고 말한다.
호통 치며 군림하는 좌파 이상주의에 대한 피로감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헬 조선’을 말하는 현상에 대해, ‘헬(hell)’이란 국가가 자기 국민을 먹여 살리지 못하고 보호하지 못할 때나 쓰는 말이지, 우리 젊은이들이 한국을 비하하며 ‘헬 조선’이라는 말을 즐겨 쓴다는 것은 결국 바깥 세상에 대한 무지의 소산이라고 개탄한다.

대한항공 조현아 사건을 통해 부자와 권력자에게 가해지는 폭력을 정당한 폭력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천박한 노예근성이라고 질타하기도 한다. 가난한 사람이 법 앞에서 불이익을 받지 않아야
하듯이 부자도 똑같이 법 앞에서 불이익을 받지 않아야 한다고 말한다.

또 김영란법은 인간의 원초적 성질을 거스르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며,
자연을 거스르면 활기가 없어지고, 활기가 사라지면 사회의 발전도 정체될 것이라 우려한다.

이외에도 청년 실업, 복면 시위, 지방대 시간 강사 문제, 금수저론, 편향적 역사 교육,
대통령 탄핵 등 2014~2017년 한국에서 일어났던 상황들을 저자는 인문학적인 시각에서
비판하고 그 오류를 경계하였다.


■ 책 속에서

가히 지금 우리 사회는 시인들의 사회이고, 시 공화국이다. …문학은 높은 정신과 고귀한 감성의 영역이므로 일반에게 널리 확산시키면 사람들의 심성이 순화되고 평화로운 사회가 될 것이라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정신적 성찰 없는 겉껍데기의 시어(詩語)만으로 감정의 순화나 고양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오늘날의 우리 사회는 보여주고 있다. 시적 감성은 오히려 상대를 공격하는 날카로운 무기가 되었다. “왜 울지 않느냐” “왜 슬퍼하지 않느냐”라는 반박 불가능한 감성의 언어들로 갈등과 증오가 증폭되고 있으니 말이다.

시민들에게 강제적으로 노출되어 있다는 점에서 공공장소의 시적 문구들은 상품 광고의 폐해와 다르지 않다. 앙리 르페브르가 광고를 비판했던 논리는 교보빌딩이나 시청의 글판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지하철 스크린 도어에는 감성적인 시구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냉정하고 이성적인 도시 행정의 개선이 필요하다. 이제 감성 과잉의 유아 단계에서 벗어나야 할 때이다.
- 62쪽 ‘너무 시적인 사회’ 중에서

그(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전 대통령)가 만일 사건 초기에 우유부단하게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 체제에 서의 아랍인들’ 또는 ‘일자리 없고 희망 없는 변두리 무슬림 청년들’에 대한 공감 어쩌고 하면서 우물쭈물 시간을 허비했더라면 어찌 되었을까? 만일 교황처럼 “타 종교를 조롱해서는 안 된다. 누가 내 어머니를 욕했다면 그는 나로부터 한 대 맞을 각오를 해야 한다”라고 말하며 테러범 소탕 작전에 소극적이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자칭 약자에 공감한다는 모든 좌파 포퓰리스트와 그에 반대하는 극우파 인종주의자들이 격렬한 싸움을 벌였을 것이고, 정부의 허약한 틈새에 고무된 테러리스트들은 여기저기서 폭탄을 던지고 인질극을 벌였을 것이다. 외국인들은 “역시 프랑스는 할 수 없어”라며 경멸적인 시선을 보냈을 것이고, 난장판이 된 일상 속에서 불안에 떨던 국민들은 조국에 대한 신뢰와 애정을 버리기 시작했을 것이다.

올랑드는 단호한 리더십으로 국민 통합을 이루었고, 국제적 존경심을 되찾았다. 재난은 반드시 재앙만은 아니라는 것, 평상시 같으면 도저히 풀 수 없는 난제를 단숨에 해결해주는 긍정의 기능이 거기에 있다는 것을 우리는 새삼 확인하였다. 단 권력다운 권력의 행사가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라는 사실과 함께. 역시 수백 년 간 근대 자유주의 체제를 경험한 서구 사회는 만만치 않았다.
- 118쪽 ‘파리가 세계의 수도(首都)가 된 날’ 중에서

대통령에서 좌파에 이르기까지 지금 누구나 하는 말 중에 가장 듣기 민망한 것은 ‘좋은 일자리’라는 말이다. 힘들고 천한 일이 아니라 30대 재벌 기업에서 양복 입고 사무 보는 직종만을 ‘좋은 일자리’라고 말하는 것이다. 아예 인권의 개념이 없는, 시대착오적이고 부도덕한 이 단어를 들을 때마다 나는 언제나 한없는 거부감과 불쾌감을 느낀다.
- 155쪽 ‘‘좋은 일자리’에 대한 참을 수 없는 불쾌감’ 중에서

마흔다섯에 유명 가수가 된 장사익의 스토리는 우리의 마음을 푸근하게 해 준다.
딸기장수, 외판원, 카센터 허드렛일 등 열다섯 가지가 넘는 직업을 전전했지만
천성이 낙천적이어서 한 번도 좌절은 하지 않았다고 했다.

바로 이것이다. 내 나라가 지옥이다 생각하고 항상 얼굴 찌푸리고 살면 결국 내 나라는 지옥이 된다. ‘내 나라는 좋은 나라, 나는 여기서 태어나기를 잘 했어!’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밝은 얼굴로 살면, 언젠가 자신이 바라던 모습이 되어 있을 것이다. 우리 어른들은 발랄하고 예쁜 젊은이들의 얼굴을 보고 싶다. - 158쪽 ‘긍정의 힘’ 중에서

며칠 전 한 사진작가는 부처님 얼굴에 가면을 씌운 합성 사진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그리고는
“무섭다. 사람은 마스크를 쓰면 뭐든지 할 수 있는, 이중(二重) 거짓말 능력을 가진 직립 보행 동물이다”라고 썼다. 재미있는 생각이다.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가면을 쓴 부처, 또는 가면을 쓴 예수를 떠올려본다.
인디아나 존스 같은 분위기 혹은 쾌걸 조로나 산적 로빈 후드 같은 이미지가 나올 뿐 인류 전체를 품는 자애로운 성인의 이미지는 사라지고 만다. 가면은 역시 예술과 엔터테인먼트에 한정되어 있는 것이 좋겠다. - 162쪽 ‘가면의 미학과 정치학’ 중에서

“패스트푸드점에서 일하면서 노동이 가진 힘을 알게 됐습니다. 노동에는, 모든 사람의 삶에 공감하게 만들어주는, 타인의 입장에서 사유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건강한 힘이 있더군요.”

세상의 모든 지식과 정의를 독점한 듯 사회를 마구 조롱하고 호령하던 대학 사회의 알량한 ‘지식’이 하찮고 비루한 ‘현실’ 앞에서 얼마나 위선적이고 무기력한 것인지, 그의 글은 생생한 몸의 언어로 보여주고 있었다. 그가 그어 놓은 사소한 한 줄의 금은 아마도 우리 사회를 한 단계 성숙시키는, 작지만 힘 있는 탈주선이 될 것 같다. - 168쪽 ‘지방시 김민섭의 건강한 탈주’ 중에서

운이 따르지 않아 사회에서 부당하게 취급되고 버림받았다고 느끼는 요즘 젊은이들의 금수저론은 ‘가족 소설’의 역(逆)이미지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사회 문제라는 큰 틀에 넣음으로써 부모에 대한 부정(否定)이라는 죄의식에서는 벗어났지만 결국 부모 잘 못 만나 자신이 괴로움을 당한다고 생각하는 방식은 여전히 또 하나의 ‘가족 소설’이기 때문이다. 이 단계에서 빨리 벗어나는 것만이 개인적으로는 건강한 인격체, 사회적으로는 성숙한 공동체가 되는 길일 것이다.
- 178쪽 ‘금수저의 정신분석’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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